거양과 PEC의 해외 시장 진출 남미 건설시장 진출과 역경
중국에서의 철강 플랜트 사업 IMF에 쓸려간 인도네시아 미니밀
중국 철강 플랜트 시장의 강자로 부상 이란에 일관제철소 건설
베트남에 떨친 포스코건설의 명성 해외 개발사업 추진
이집트에서 펼친 포스코건설의 투혼    
 
회사 출범 무렵 포스코가 베트남 하이퐁에 설립한 VPS 공장을 건설해 베트남 철강 플랜트 시장에 진입한 포스코건설은 현지 합작공장인 포스리라마의 운영을 바탕으로 베트남 철강 플랜트 시장을 적극 개척했다. 2000년대 들어 POSVINA CCL을 비롯해 나키스코(NAKISCO) CGL 및 CCL, 제네럴 트레이드(General Trade) CGL 및 CCL 공사를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2001년 4월 19일 수주한 POSVINA CCL은 포스코의 투자사업으로 2만 2000톤 규모의 칼라코팅 강판을 생산하는 설비이다. 이 프로젝트는 수주 금액이 적어 수익성에서는 다소 불리했으나,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표면처리 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01년 12월 토목공사를 시작해 2002년 6월 준공하기까지 공기절대 부족이 예상되는 사업이었으나 발주자, 설비공급사, 시공사 3자 모두 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공기준수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NAKISCO사로부터 수주한 CCL 및 CGL 프로젝트는 13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공기로 공사를 수행, 2004년 4월 준공했다. 연간 CGL 3만톤과 CCL 2만톤 생산 체제를 갖춘 이 프로젝트는 발주자가 순수 민간업체라는 점에서 회사의 기업 브랜드와 기술력을 인정받은 프로젝트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설비 일체의 설계와 공급 및 시운전까지의 엔지니어링 업무를 담당했다.

이 프로젝트는 발주자가 베트남 민간 철강 무역업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시공업체 선정 및 공사관리 등 전반적인 프로젝트 수행관리 면에서 포스코 그룹과는 많은 차이를 보임으로써 공기 준수라는 원칙을 고수하는데 많은 난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진행됐다.

제네럴 트레이드 CGL 및 CCL는 하노이 인근 타이빈(Thai Binh)성에 연산 5만톤 규모의 CGL 1기와 연산 3만톤 규모의 CCL 1기의 엔지니어링 및 기자재 공급과 설치, 시운전 및 조업 관련 슈퍼바이징을 공급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그 동안 포스코건설이 베트남에서 수행한 프로젝트 실적과 기업 브랜드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전개해 2003년 6월 수의계약으로 수주했다.

발주자가 수행하기로 했던 토목공사가 베트남 정부의 토목도면 승인 지연으로 2004년 7월에야 착수됐다. 포스코건설은 공기 만회 대책을 발주자와 협의하고, 병행공사 및 필요시 포스코그룹의 공사관리 기법을 코멘트하는 등 발주자를 최대한 지원했다. 공종별 공기 및 공사품질 확보를 위해 전문 시공업체와 계약하도록 유도했으며, 수전 등 대관청 업무의 조속한 추진을 발주자에게 독촉함으로써 시운전 절대공기 확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4년 12월 기전공사에 들어가 2005년 6월 준공할 예정이다.

베트남 현지법인인 포스리라마는 베트남 중부지역의 초등학교와 병원 건립공사, 캄보디아 직업훈련원 공사를 시공함으로써 인도차이나 지역에서의 사업능력을 배양했을 뿐만 아니라 포스코건설의 이미지를 제고했다.

2001년 4월 17일 수주한 베트남 중부 초등학교 건설공사는 우리나라 정부가 무상 원조해 베트남 최대의 빈곤 지역인 중부 지역에 40개의 초등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주요 작전지역이었고 이곳에서 한국군과 베트남군 사이의 수많은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베트남인들을 위해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사과의 뜻으로 진행하는 사업이었다.

당초 교실 4개, 교무실 1개로 계획했으나, 베트남 측 요청에 따라 교실 6개, 교무실 1개로 늘리다 보니 처음 예상한 금액으로는 공사를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현지 업체를 통해 염가로 적당히 공사를 할 수도 있었으나, 사업의 상징성을 감안해 반드시 한국 업체가 양질의 한국산 자재를 사용해서 지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건설업체는 이익은커녕 잘못하면 수십만 달러의 손실을 볼 수도 있었다.

더욱이 외환 위기 직후여서 우리 기업들이 대부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때였고, 낯설고 비우호적인 지역의 벽지 마을 40군데에 학교를 짓는 황당한 구상이었기에 어느 업체에도 이를 강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고민 끝에 자금 사정이 양호하고 중장기적 차원에서 베트남 내 사업 확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던 포스코건설에 도움을 요청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사업하는 정신으로, 베트남에 대한 한국민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마음으로 사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포스코건설은 기꺼이 수락했다. 절대 부실 공사를 해서는 안 되며 품질 좋은 국산 자재를 사용해서 최고급의 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지만 얼마를 손해 보더라도 포스코의 명예를 걸고 훌륭한 학교를 짓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에도 학교 건립 과정에서 몇 개 학교에 축구장 및 스탠드 건설, 홍수 방지 시설 설치 등으로 인해 추가 경비가 들어갔지만 포스코건설은 추가 경비 요구 없이 기꺼이 이를 모두 수용해 주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공사를 베트남 현지법인인 포스리라마에 맡겼고, 포스리라마는 교통이 불편한 산간오지의 40여 곳에 소규모 초등학교를 건설하는 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료함으로써 반한 감정을 해소하고, 포스코건설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