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양과 PEC의 해외 시장 진출 남미 건설시장 진출과 역경
중국에서의 철강 플랜트 사업 IMF에 쓸려간 인도네시아 미니밀
중국 철강 플랜트 시장의 강자로 부상 이란에 일관제철소 건설
베트남에 떨친 포스코건설의 명성 해외 개발사업 추진
이집트에서 펼친 포스코건설의 투혼    
 
포스코건설이 1996년 1월 수주한 아르코(ARCO) 프로젝트는 영광과 시련을 함께 안겨준 프로젝트이다. 중동 최대의 특수강공장 건설공사라는 영광의 이면에는 수주에서부터 공사 과정, 그리고 그후 수많은 난관과 역경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카이로시 북서쪽에 있는 사다트시에 연산 14만톤 규모의 특수강 플랜트를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는 수주 금액이 1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프로젝트는 1993년 10월 포스코건설의 전신인 PEC가 입찰 정보를 입수하면서 시작됐다. 일괄수주 방식인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PEC가 설계에서 설비공급, 시운전, 현장교육 등을 담당하고 삼미특수강은 조업 노하우를, ㈜대우는 수출 및 금융 부문을 담당하기로 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수주전에는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의 쟁쟁한 제철설비 전문 엔지니어링 및 설비 제작업체들이 참여했다. 포스코건설이 이들 선진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당당히 경쟁해 1995년 2월 최저가 입찰자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으나, 최저가격 입찰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컨설턴트인 일본 NKK가 설계능력 부족, 해외실적 전무, 기술력 미흡을 이유로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을 최종 협상에서 제외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포스코건설 경영진은 이집트를 방문해 부당함을 주장했고, 정부도 국가 차원에서 외교 채널을 동원해 주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발주처에서는 1995년 7월에 새로운 입찰 조건으로 재입찰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재입찰에 참가한 포스코건설은 1995년 9월 30일 최저가 입찰자로 결정됐으며, 11월에 열린 아르코 이사회에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1996년 1월에 계약 서명을 한 후 총자본금의 13.4%인 1000만 달러를 출자하고, 설비 제작사를 선정한 후 1997년 4월 14일 착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1999년 5월 압연 가열로를 점화하면서 시운전에 들어가 2000년 6월 11일 설비 테스트를 완료했다.

그러나 아르코 측에서 공기 지연과 설비 성능을 문제 삼으며 준공 확인을 미뤘고, 결국은 분쟁으로 이어졌다. 분쟁의 조짐이 보이자 포스코건설은 협상대책반을 구성해 아르코 측과 협상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더욱이 아르코 측은 시운전 결과 성능보장에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행보증서를 빌미로 추가설비를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이 이를 거부하자 아르코는 2001년 6월 은행에 이행보증금 지불을 청구했고, 포스코건설은 집행금지를 신청하는 등 본격적인 분쟁이 전개됐다.

그러나 양측은 결국 이런 분쟁이 소모적인 일임을 알고 2002년 10월 재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협상 테이블을 통한 공식 협상은 물론 비선조직을 통한 물밑 협상도 전개해 2003년 5월 14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최종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우여곡절로 점철됐던 프로젝트를 종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