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특수강공장(ARCO) 프로젝트 이란에 고로를 포함한 제선설비 일체 수출
 
포스코건설은 이집트에 중동 최대의 특수강공장을 건설했다. ‘ARCO 스페셜 스틸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시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90㎞떨어진 사다트시의 국가산업공단 내에 특수강 플랜트를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이 이집트의 아르코스틸(ARCO Steel: Arab Company for special steel)사가 발주한 특수강 플랜트 설비공급 업체로 선정된 것은 종합 엔지니어링건설회사로 출범한 지 10개월만인 1995년 9월이었다. 이는 1995년 4월 한·이집트 국교 수교 이후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대형 플랜트 수주에 성공한 쾌거였다.

발주처인 아르코스틸은 1993년 4월 이집트의 메탈루지컬산업사(The Metalugical Industries Corp.) 외 8개사,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회사, 룩셈부르크의 국제지주회사 등 총 11개사가 1993년 4월 이집트 내 특수강 공급을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였다.

이 프로젝트의 수주전에는 이탈리아의 다니엘리, 독일의 티센 데마그(Thyssen Demag), SMS, 오스트리아의 VAI 등 세계 유수의 제철설비 전문 엔지니어링 및 설비 제작업체들이 참여했다. 1993년 10월 입찰 정보를 입수한 포스코건설의 전신인 PEC는 일괄수주 방식인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컨소시엄 파트너를 물색했다. PEC가 설계에서 설비공급, 시운전, 현장교육 등을 담당하고 삼미특수강은 조업 노하우를, ㈜대우는 수출 및 금융 부문을 담당하기로 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그 후 낙찰을 위한 숨 가쁜 일정이 전개돼 1995년 2월 11일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최저입찰자로 확인됐다. ARCO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한달 뒤인 1995년 3월 10일, 최저가격 입찰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컨설턴트인 일본 NKK가 해외 실적이 없으며 기술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을 최종 협상에서 제외시키고 제강 부문에는 VAI를, 압연 부문에는 다니엘리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추천했다.

회사 출범과 함께 날아들었던 낭보의 기쁨에 아직 젖어 있던 포스코건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바로 사태 수습에 들어갔다.

특수강 공장소유와 운전 경험이 자격조건이어서 삼미특수강을 파트너로 참여시켰는데, NKK가 삼미특수강의 설비를 과소평가해서 기술부족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경영진이 이집트를 방문해 사전 입찰 자격심사에서 이미 기술 능력을 인정한 후 기술적인 사유로 탈락시키는 것은 국제 관례와 입찰안내서에 비추어 부당함을 주장했고, 우리 정부에서도 국가 차원의 외교 채널을 동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노력이 결실을 거둬 1995년 6월 12일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업자 선정 재검토를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95년 7월 자본참여 및 경영판매 지원이 포함된 새로운 입찰조건으로 재입찰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면서 프로젝트 컨설턴트가 인도의 다스트루(Dastur)로 바뀌었다. 포스코건설은 재입찰 참여 요청을 접수하고 제강, 압연 최종 기술사양서를 제출했고, 뒤이어 수배전, 유틸리티 최종 기술사양서를 제출했다. 1995년 9월 30일 최종 상업사양서 제출과 함께 가격을 개봉한 결과 포스코건설이 최저입찰자로 결정됐다. 이어 다스트루가 가격과 기술 평가 후 포스코건설을 낙찰자로 추천했으며, 11월에 열린 ARCO 이사회에서 우선협상 대상자로 공표했다.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전기로를 포함한 일관제철 공정으로 구성된 중동 최대의 특수강 공장을 턴키로 수주하는 쾌거를 이룬 것 이었다.

이 특수강 공장은 미니밀(Mini Mill)분야에서도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로서 국내 최초의 해외 설비공급이라는 측면 외에도 공급자에게 조업 노하우 제공, 위탁경영, 위탁 해외 판매도 별도로 진행하는 것이라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주요설비 구성을 보면, 제강부문에서는 45톤 규모의 전기로 1기, 정련로, 진공탈탄설비, 연주기, 압연부문에서는 가열로, 조압연기, 빌레트 정정기, 사상압연기, 정정설비 등이 있으며, 기타 수배전 시설과 산소공장 등의 유틸리티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기자재, 건설, 운영자금 등 총투자비 2억 5000만 달러가 투입되는 이 공사에서 포스코건설이 수주한 금액은 엔지니어링, 설비 공급, 노하우 이전, 위탁경영, 위탁수출판매로 약 1억 5400만 달러(한화 1170억 원)규모였다.

연간 생산능력은 14만톤, 제품별 생산량은 탄소강 5만 2500톤, 쾌삭강 3500톤, 합금강 3만 7500톤, 스프링강 1만 500톤, 스테인리스강 3만 5000톤이며, 선재 4만톤, 봉강 9만 1500톤, 형강 8500톤이었다.

포스코건설은 1996년 1월 13일 계약 서명 후 ARCO 스틸사로부터 지분 참여 요청을 받고 총자본금 7500만 달러 가운데 13.4%인 1000만 달러를 출자했다. 이어 압연부문 주설비 외주제작사로 이탈리아의 포미니사를, 제강 주설비 제작사로 이탈리아의 다니엘리사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ARCO 특수강 플랜트 프로젝트는 1997년 4월 14일 착공식을 갖고 본격 공사에 착수했다. 9월에는 공장 철골 설치공사에 착수했으며, 12월에는 기전공사를 개시했다. 1998년부터 설비의 설치가 본격화돼 점차 공장이 모습을 찾아갔다. 1999년 5월 압연 가열로를 점화하면서 시운전에 들어가 2000년 6월 11일 설비 테스트를 완료했다.

그러나 9개월이나 공기가 지연된 상황이었다. 현지 시공사의 기술력 부족과 공기준수 의지 부족, 발주처 및 CM사와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 등이 원인이었다. 이는 나중에 분쟁의 불씨가 됐다.

그리고 제품이 생산되면서 발주처는 설비가 제작사양에 맞지 않으며, 제품이 적합하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포스코건설은 대부분의 설비가 계약 사양을 충족시켰고, 일부 하자가 있는 것들은 모든 플랜트가 그렇듯이 시운전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이 된다고 했지만 발주처는 이를 계속 문제점으로 몰고 갔다.

이런 이면에는 ARCO 측의 내부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집트 내수시장 및 해외시장 수요확보 실패에 따른 판매부진, 조업기술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및 고급강 생산 불가, 당초 설비계획상의 누락설비로 인해 고급강 생산체제 불합리, 자금부족으로 인한 경영압박 등이 그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던 ARCO는 자본증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면서 경영 책임 문제를 의식해 포스코건설에 화살을 돌렸던 것이다.

설비공급 지연, 설비부족, 생산상의 문제점, 핫런 테스트 지연, 스페어 파트 부족 등을 이유로 미수금 지불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준공확인(FAT)을 해주지 않았다. 포스코건설의 계속되는 미수금 지급 요청에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클레임을 청구하겠다고 위협할 정도였다.

이러한 분쟁의 조짐이 1999년의 시운전 단계에서부터 본격화되자 포스코건설은 협상대책반을 구성해 협상에 임했다. 협상대책반이 ARCO 측과 4차에 걸친 협상을 벌였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ARCO 측은 시운전 결과 성능보장 수치 시현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행보증서를 빌미로 계약 외 설비 등 37개 항목의 추가설비를 요구했으며, 계약과 관련 없이 2년간 조업에 필요한 스페어 파트와 소모품의 무조건 공급을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이 ARCO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자 ARCO는 2001년 6월 27일 계약 금액의 10%(약 1300만 달러)를 예치시켜놓은 이행보증금을 지불해 달라는 이행보증서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ARCO의 이행보증 청구가 부당함을 사유로 보증서 발행 소재지인 이집트와 복보증 발행은행 소재지인 미국에서 이행보증서 청구에 대한 집행금지를 신청했다. 포스코건설의 이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이후 포스코건설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ICC 국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함으로써 본격적인 분쟁이 전개됐다. 포스코건설은 파리에 있는 변호사를 고용해 기술적인 잘못을 가리는 컨설턴트 계약을 체결하고 2년 여 동안 분쟁을 했다. 그러나 쌍방의 주장이 팽팽해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으며, 분쟁이 길어질수록 양측은 소송에 이겨도 이득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분쟁이 소모적인 일임을 알고 양측은 2002년 10월에 재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협상 테이블을 통한 공식 협상은 물론 비선조직을 통한 물밑 협상도 전개했다. 길고긴 줄다리기를 전개한 끝에 2003년 5월 14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최종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우여곡절로 점철됐던 10년간의 ARCO 프로젝트를 종료할 수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프로젝트에서 많은 금전적 손실을 입었지만, 해외 철강 플랜트 수행에 있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