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 포스플라자 투자사업 하와이에서 콘도미니엄 분양사업 전개
베트남 호치민 다이아몬드 플라자    
 
1990년 4월 중국 국무원은 1997년의 홍콩 반환에 앞서 제2의 홍콩을 목표로 상해시 포동신구(浦東新區) 육가취(陸家嘴) 지구를 세계적인 금융, 무역, 상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상해는 국제 비즈니스의 중심지역으로 급부상해 외국 기업의 투자가 급증했으며, 상해시의 외국인 대상 사무실의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 최신 고급 사무실용 건물이 부족한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포스코건설은 중국 시장 변화를 발 빠르게 읽어내고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1억 8600만 달러를 단독으로 투자해 중국 상해시 포동지구에 포스플라자(POS-PLAZA, 당시 명칭은 상해 비즈니스센터)를 건설함으로써 중국 건설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상해시 포동신구 육가취 죽원상업구(竹園商業區) 내에 건립된 포스플라자는 지하 4층, 지상 34층 규모의 외국인 전용 고급사무실 및 상가용 임대건물이다. 부지면적 3456평, 연면적 2만 9680여 평, 건축고도 155m의 초대형 복합건물로 사무실 연면적 1만 7480여평, 상업시설 2700여평, 문화시설 1600여평, 공용시설 900여평, 790대 규모의 전용 및 공공주차장 시설이 7000여 평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계사인 미국의 페이 콥 프리드 앤 파트너스사에서 기본설계를 하고, 한국의 POS-A.C.와 내외건축설계사무소가 공동으로 기초설계 및 상세설계를 했다. 또한 최신예 설비와 최신 관리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빌딩의 고급화를 위해 포스코에서 자체 개발한 고급 스테인리스 냉연재를 외장재로 사용했다.

포스코건설이 단독투자 형태(투자개발 수주방식)로 추진한 이 사업은 1994년 7월부터 사업추진 검토에 들어가 1994년 11월 18일 상해시와 토지매입 계약을 체결해 50년간 토지사용권을 취득함으로써 막이 올랐다. 1995년 4월 18일에는 한국은행으로부터 투자 승인을 획득하고, 6월 중국 현지법인인 상해포항방지산개발유한공사(上海浦項房地産開發有限公司)를 설립했다.

포스코건설은 포스플라자 건립을 위해 1995년 10월 27일 상해시로부터 건설면허를 취득했다. 건설면허 취득으로 포스플라자 건립은 물론, 다른 외국 투자 건설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외국 건설업체에 건설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던 중국에서 건설면허를 취득한 것은 우리나라 업체로는 최초였다.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중국 건설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었다.

포스코건설은 이 사업을 위해 투입한 1억 8600만 달러의 소요자금 중 33%는 회사출자로, 나머지 67%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조달했다.

1996년 2월 14일 중국 정부로부터 프로젝트의 초보설계비준서를 취득했다. 초보설계비준서는 중국의 건축 관련 법규상 착공 허가와 각종 인허가를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하는 사전심사로서 우리나라의 건축허가에 해당되며, 상세설계는 이 초보설계 비준내용을 기초로 해서 진행됐다.

포스코건설은 포스플라자의 특성과 업무 효율성을 감안해 현지법인과 시공 조직을 일원화시켜 프로젝트팀을 운영했다.

프로젝트 시작 당시 완공될 건물의 명칭을 상해 비즈니스센터로 호칭했으나, 건물의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데다 독창적인 이미지를 살릴 수 없어 1996년 4월 공모를 통해 추천된 ‘은관대하’(銀冠大廈 Sliver Crown Tower)로 바꾸었다.

추천자인 이왕걸 당시 상해사무소장의 말에 따르면 ‘은(銀)’은 건물 전체의 외장재로 쓰이는 스테인리스 냉연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은의 빛깔이 주는 고귀함과 포스코의 철강산업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관(冠)’은 건물 꼭대기 부분의 구조물을 왕관 모양으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하(大廈)’는 빌딩, 센터, 플라자 등의 서구화된 어휘 대신 향후 현지화를 목표로 한 중국식 표현의 건물을 나타낸 것이다.

건설공사는 1997년 3월 15일 굴착을 완료하고 두께 3.0m~1.8m의 약 2만㎥의 매트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한 다음 4월 18일 철골 입주식 및 안전결의대회를 갖고 골조공사에 본격 착수했다. 1998년 1월 24일에 철골공사를 완료하고 3월 1일 외장 커튼월 공사를 착수했으며, 1999년 6월 외장공사를 완료하고 7월부터 각종 기기 및 장비 시운전을 거쳐 모든 건설공사를 9월 30일 완료했다. 이어 입주사 실내장식과 건축 잔여공사, 손보기 작업 등을 모두 마치고 1999년 11월 1일 중기선경 등 3개사를 시작으로 입주가 시작됐다.

많은 인력을 파견할 수 없어 착공 당시에는 최소 인력인 10명만 투입했으나, IMF 관리체제로 인한 국가 경제위기로 인해 1998년 이후에는 6명이 수행하게 됐으며, 부족한 인력은 현지에서 직원을 채용해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1996년 당시에는 중국 현지의 자재 및 고급 마감 기술수준이 열악해 불가피하게 많은 한국 업체를 시공에 참여시켰다. 강관파일 원자재 및 철골소재는 포스코 제품을, 철근은 인천제철에서 수입해 사용했다. 외장 커튼월은 현대알미늄에서 현지 업체를 동반해 시공에 참여시키는 등 토목 및 골조공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마감재 및 설비기자재를 한국 및 제3국에서 수입해 시공했다.

토공사 중 지하 연속벽을 본 건물의 외벽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공사 중 지하 연속벽의 인터로킹 파이프를 조기에 인발할 때에는 콘크리트 벽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고, 인발이 늦게 되면 인발을 못하거나 이음부의 콘크리트가 파손될 수도 있었다. 이에 따라 인터로킹 파이프를 삽입하고 인발하는 공법 대신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파일로 대체해 시공하는 신공법을 현지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하여 시공함으로써 신기술로 지정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상당한 공사비 절감과 공기단축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포스플라자 공사는 중국 현지 품질 및 안전관련 수상실적이 총 12건이나 되는 엄청난 실적을 올렸다. 대표적인 것이 1997년 6월 19일 상해시가 실시한 1997년 상반기 현장 평가 결과 우수 현장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는 상해시 지역의 1만 2000여 개의 평가 대상 현장 중 우수현장으로 선정된 35개 현장에 속한 것이었다. 이어 1998년 10월 27일에도 상해시 건설위원회로부터 외국 건설회사 우수현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것은 외국기업으로서는 처음 수상한 영예였다.

1997년 11월 20일 은관대하에서 명칭을 바꾼 포스플라자는 2000년 5월 17일 상해시로부터 건축 금상을 받았다. 상해시의 포동개발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실시한 우수 건축물 선정 행사에서 포스플라자가 금상을 받게 된 것은 21세기 사무환경에 걸맞은 사무공간을 구현해 품질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중바닥(Access Floor)을 설치하고, 기둥 없는 사무공간을 구현했으며, 광통신망 설치 등 인터넷 사무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건설했던 것이다. 또 중국에서는 최초로 스테인리스 마감재를 활용해 미려한 건물 외관을 구현했다.

포스플라자 현장은 착공 이후 단 한건의 재해도 없이 1999년 5월 무재해 500만 시간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