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E&C 회사를 지향하며 베트남과 중국에서 개발사업 추진
연구소 설립과 E&C 기술력 확보 BEST POSEC 운동 전개와 기업문화 선포
경영효율화와 조직융화로 성장기반 구축 2년 연속 공해방지시설 실적 1위 달성
철강 플랜트 사업의 본격 전개 광양 5고로 건설로 고로 분야 강자로 부상
베트남과 중국 철강 플랜트 시장 진출 ISO 9001 인증 획득으로 품질경영 본격화
교량과 도로 건설로 토목분야 진출 영광과 시련을 안겨준 이집트와 남미 철강사업
개발사업 위주로 건축사업 전개 
 
토목사업과 마찬가지로 건축사업 진출도 실적이 미미하고 경쟁업체들의 견제로 인해 관급공사 수주전에는 제대로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민간 발주공사와 포스코 관련 공사, 그리고 거양개발 시절부터 추진해오던 개발사업에 무게중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1991년 5월 본격적인 건설회사로 발돋움 한 거양개발은 안정적 성장을 위해 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1993년 4월 착공해 1994년 8월 준공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 메트로상가 첫번째 개발사업이었다. 지주는 토지를 제공하고 거양개발이 건물을 지어 분양한 뒤 공사비를 회수하는 한편, 이익금을 분배하는 지주공동개발사업 방식이었다.

거양개발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강남역 주변에 강남빌딩과 강남역빌딩 등 두 개의 오피스 빌딩을 건축했다. 포스코건설이 출범한 뒤인 1996년과 1997년에 각각 완공한 두 건물 모두 지주가 토지를 제공하고 거양개발이 건물을 지어 분양한 뒤 공사비를 회수하는 분양조건형 개발사업이었다.

그러나 거양개발에서 시작해 포스코건설이 출범한 후에 완료한 부산 사상 공구월드는 경험 부족과 사업계획의 미비로 인해 실패의 쓴맛을 본 대표적인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 역시 분양조건형 도급공사였는데, 예정공기를 9개월이나 넘기는 바람에 분양이 늦어지면서 투자비를 조기에 회수하지 못해 많은 적자를 보았다.

한편 PEC도 개발사업을 추진해 도심지 재개발사업인 충정타워 건설공사를 수행했다. 1994년 1월 착공, 1996년 7월 준공한 충정타워는 참여지주(조합원)에게 지분별로 일부 분양하고, 잔여 부분은 포스코건설이 일반 분양해 공사비와 기타 경비를 충당하는 일종의 재개발 사업이었다.

포스코건설 출범 이후에는 거양개발이 장기적인 사업 전략에 따라 매입해 두었던 부지와 새로 매입한 부지를 기반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지금의 가락동 IT 벤처 타워와 유성 프로젝트, 그리고 포스코경영연구소 사옥이 그것이었다.



IT 벤처 타워는 IMF의 영향도 있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프로젝트였다. 1994년 11월 부지 매입 이후 사업검토가 이루어져 1995년 10월 지하 7층, 지상 21층의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지하 터파기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IBS 건설 경험을 통한 목적사업 우위 확보 등을 고려해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추진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포스코건설 최초로 지하공사와 지상공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톱다운 공법을 적용해 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생한 IMF 관리체제 여파로 1998년 9월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

유성 프로젝트 또한 난항의 연속이었다. 대전 정부청사 입주에 따른 도심형 레저 수요 확대 및 포스코그룹 임직원들의 복리후생 시설 수요 증대를 염두에 두고 수익기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국내 최초의 도심형 콘도미니엄이라는 컨셉트로 추진된 개발사업이었다.

세 차례의 투자검토위원회와 두 차례의 경영위원회를 거쳐 1995년 5월 지주(구 무궁화관광호텔) 측과 사업 약정을 체결하고 본격 출발했지만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사업 약정 이후에도 포스코 감사를 비롯해 감사원 감사, 국세청 감사, 국정감사 등 일년에 네 차례의 감사를 받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분양을 앞둔 시점에서 IMF를 맞으면서 24층까지 철골조가 완성된 1998년 4월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