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시절의 건축사업 주택사업의 기폭제 분당 파크뷰
거양개발과 PEC의 개발사업 추진 건축사업의 활성화
건축사업 진출의 난항 the# 브랜드 시대 개막
포스코 관련 건축공사 주택시장의 강자로 부상
IMF 파고와 건축사업의 위기 공공건축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입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미래형 도시개발 사업의 선도
재건축 시장의 무한경쟁을 불러온 포스코건설    
 
포스코건설의 건축사업은 포스코 시절의 건설본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포스코 건설본부는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 건설업무뿐만 아니라 포항과 광양의 사원주택단지 건설을 비롯해 각종 건축물 공사의 사업관리자로서 외부 건설업체에 발주된 공사의 완벽한 시공과 품질관리, 공정관리를 담당했다. 포스코 건설본부의 건축사업 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포스코센터라 할 수 있다.

1992년 1월 착공해 1995년 8월 준공된 포스코센터의 시공은 동아건설이 맡았지만 포스코 건설본부가 사업관리(CM)를 담당하고, PEC의 관계사였던 세마건축(현 POS-A.C.)이 건물 설계, 거양개발이 철골 제작과 설치에 참여했다.

CM은 국내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일부에 국한해 적용됐고, 1990년대 말에야 법으로 명시된 선진화된 사업관리 방식이었다. CM은 발주처의 건설관리 조직으로서 발주처와 건설사 사이에서 발주처의 위임을 받아 기획, 예산, 설계, 발주, 인허가, 시공관리, 준공 및 자산관리까지 모든 단계별로 발생하는 건설 관련 업무를 주관하는 형태였다.

포스코 건설본부는 건설 단계별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해 기획, 설계, 시공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시공자의 책임시공을 유도하고, 불요불급한 업무를 과감히 정리해 건설요원을 소수정예화했으며, 감리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조직적인 품질관리 체제의 확립을 유도했다.

따라서 포스코 건설본부가 포스코센터의 CM을 담당한 것은 국내 건설사에서는 최초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에 적용한 사례로서, 국내 건축업계를 선진화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었다.

포스코건설의 전신이었던 포스코 건설본부를 비롯해 거양개발, PEC 등이 손잡고 완성한 포스코센터는 20세기의 마지막이자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포스코센터는 원래 45층 단일 건물로 계획돼 건축허가를 취득했으나, 건설경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착공 연기 요청에 따라 일시 중단됐다가 다시 착공하는 진통을 겪었다. 이에 따라 당초 계획한 45층으로 건설하기에는 준공 목표일을 맞추기 어려워 연면적을 축소하고, 지상 20층과 30층의 2개 동으로 조정했다.

포스코 건설본부는 제반 여건을 고려해 당초 계획에 따라 우선 착공한 다음 변경된 사업목적을 위한 설계와 인허가 업무를 수행했다. 이른바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적용해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는 고난도의 CM을 수행한 것이었다.

포스코 건설본부는 건물이 최고의 품질을 갖출 수 있도록 설계단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전 건설과정을 통해 모든 건설 관계자가 준공 후에 야기될 수 있는 제반 기술적인 문제점을 사전에 면밀히 연구 검토해 모든 면에서 어떠한 하자도 없는 완벽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포스코 건축 공사의 CM 역할을 수행해 오던 건설본부의 경험 인력이 주축이 돼 출범한 포스코건설은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건축 분야에서 업계의 정상권에 올라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