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시절의 건축사업 주택사업의 기폭제 분당 파크뷰
거양개발과 PEC의 개발사업 추진 건축사업의 활성화
건축사업 진출의 난항 the# 브랜드 시대 개막
포스코 관련 건축공사 주택시장의 강자로 부상
IMF 파고와 건축사업의 위기 공공건축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입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미래형 도시개발 사업의 선도
재건축 시장의 무한경쟁을 불러온 포스코건설    
 
포스코건설은 탄생과 함께 포스코로부터 수주하는 철강 플랜트사업을 바탕으로 건축사업과 토목사업으로의 진출을 도모했다. 지속적인 성장 및 독자적인 수익기반 구축을 위해서는 포스코의 철강 플랜트에만 의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스코가 1992년 10월 광양제철소 종합준공을 계기로 설비확장을 완료했기 때문에 신설공사보다는 합리화나 신예화 위주로 공사물량이 발주될 수밖에 없어 포스코건설이 철강 플랜트 위주의 사업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과거 포스코 시절이나 거양개발, PEC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사업이나 토목사업에 뛰어들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의 이러한 움직임은 업계의 반발을 불러왔고, 포스코를 통한 우회적인 견제에 시달려야 했다.

포스코건설은 포스코그룹 내의 건축 물량을 밑바탕 삼아 거양개발 시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 오던 개발사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거양개발 시절 이미 장기적인 사업 전략에 따라 서울 강남구 도곡동과 삼성동 그리고 송파구 가락동 등에 부동산을 매입해 두고 있었는데, 이를 이용한 개발사업에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가락동 IT벤처 타워의 건설이 었다.

가락동 IT벤처 타워는 IMF의 영향도 있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프로젝트였다. 1994년 11월 서울특별시의 체비지였던 해당 부지를 매입한 이후 본격적인 사업 검토가 이루어져 1995년 10월 지하 7층, 지상 21층, 연면적 2만 5000평의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지하 터파기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첨단사무실 수요증대 전망, 업무시설 고급화 추세, 포스코건설의 IBS 건설 경험을 통한 목적사업 우위확보 등을 고려해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추진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포스코건설 최초로 지하공사와 지상공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톱 다운(Top Down) 공법을 적용해 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생한 IMF 관리체제 여파로 1998년 9월 공사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법인세 부담과 비업무용 판정 등이 우려돼 1개 동은 외형 중심으로 공사를 재개하고 수요자 유치에 따라 지하상가 및 잔여 1개 동을 완성하는 단계별 사업 추진방식으로 사업추진 방침을 재차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1개 동을 주상복합 아파트로 건설하기로 하고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과정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그럴 때 ASIC 산업지원과 육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기 입주가 가능하고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및 첨단 시설 수용 등의 기반 시설 여건을 갖춘 건물을 물색하던 정보통신부에 1개 동을 매각하고, 나머지 1개 동을 ASIC 관련 벤처기업을 유치해 건물 전체를 벤처 빌딩으로 지정받았다. 이에 따라 공사가 중단된 채 지상 18층 2개 동의 건물이 철골만 앙상하게 서있던 상태에서 공사를 재개해 2001년 8월 준공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난항을 겪어야 했던 개발사업은 유성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대전 정부청사 입주에 따른 도심형 레저 수요 확대 및 포스코 그룹 임직원들의 복리후생 시설 수요증대를 염두에 두고 수익기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국내 최초의 도심형 콘도미니엄이라는 컨셉트로 추진된 개발사업이었다.

총사업비 1200억원을 투자해 온천 관련 전문 시설과 콘도미니엄으로 구성된 지하 6층, 지상 24층, 연면적 1만 7000평의 건물을 지을 계획이었다. 세 차례의 투자검토위원회와 두 차례의 경영위원회를 거쳐 1995년 5월 지주(구 무궁화관광호텔) 측과 사업약정을 체결하고 본격 출발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사업약정 이후에도 포스코 감사를 비롯해 감사원 감사, 국세청 감사, 국정감사 등 일년에 네 차례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분양을 앞둔 시점에서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24층까지 철골조가 완성된 1998년 4월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

그 후 시행사와 공동 매각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길고도 지루한 시행사측과의 공방을 계속하다 포스코건설이 사업권 전체를 인수해 단독 매각하기로 하고 2000년 9월 지주측으로부터 부지를 인수했다. 그 이후에도 사업성 불투명으로 인해 난항을 거듭하다가 결국 전체를 매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국내외 사업자를 상대로 매각을 추진했으나 2004년 9월 현재까지 종지부를 찍지 못하였다.

이밖에도 투자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부지를 매입해 다각적인 검토 끝에 업무시설을 건립해 분양하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1996년 2월 12일 착공에 들어갔다.

공사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IMF 관리체제로 인한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사업수지가 악화되고 분양도 불투명해지자 경영층의 결단으로 기존 공기대로 준공하고 일괄 분양하기로 했다. 업체 물색을 추진하다 계열사인 POSRI(포스코경영연구소)에 매각함으로써 성공적인 투자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