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으로 추진한 부산 사상 공구월드 서울대 포스코 생활체육관 등 교육시설
난항을 거듭한 유성 프로젝트 35년 역사를 집대성한 포스코 역사관
부산의 얼굴을 바꾸는 아이온시티와 피에스타 최초의 병원공사 서울시립아동병원 증개축 턴키 수주
건축분야 첫 턴키공사 김해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아파트형 공장과 전동차사무소
용인 동백 테마형 쇼핑몰    
 
유성 프로젝트는 1994년 12월 대전 정부청사의 입주가 시작됨에 따른 인구 유입과 기반시설 확충으로 인한 도심형 레저 수요가 확대될 것을 예상하고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포스코 그룹사 직원의 복지후생 향상과 수익기반의 다변화라는 면을 부각해 국내 최초의 도심형 콘도미니엄이라는 컨셉트로 시작한 사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항을 예고하고 있었다. 유성 프로젝트는 투자검토위원회 3회, 경영위원회(현재 이사회) 2회를 거치고 난 후에야 1995년 5월 지주(구 무궁화관광호텔) 측과 사업약정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사업 개요는 인허가 진행 과정에서 몇 차례 변경됐지만 큰 골격은 다음과 같았다. 지하 6층, 지상 24층 연면적 1만 7000평의 철골조 건물을 짓는 것으로, 지하 1~2층에는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파월드라는 대온천욕장, 지상 3~4층에는 대연회장, 지상 5층에는 쿠어하우스라는 온천 관련 전문 치료시설을 계획했다. 또 지상 6층에서 지상 23층까지는 객실이 들어서고 최상층에는 대전광역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가 배치되는 총사업비 12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사업 약정 이후에도 이 사업은 각종 감사에 시달리며 어렵게 진행됐다. 포스코 감사를 비롯해 감사원 감사, 국세청 감사, 그리고 4개월여가 소요된 국정감사 등 1년에 네 차례의 감사를 받아야 했지만 단 한건의 지적도 받지 않았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1997년 10월 콘도미니엄 분양을 위한 카탈로그 시안을 확정하는 등 겨울 시즌 분양 준비를 끝내고 분양 D-데이를 언제로 잡을지 고심하고 있을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IMF 관리체제를 맞았다. IMF 시대에는 유성뿐만 아니라 포스코건설의 모든 프로젝트가 일시 중단상태에 빠짐에 따라 대책 수립에 전력을 다했다.

유성 프로젝트는 규모면에서는 분당 프로젝트에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시행사(지주) 측과의 법적 문제가 걸려 있어 당시 개발사업본부 직원 중 가장 많은 60여 명이 추진반으로 발령이 났으며, 결과보고까지 5개월이 소요된 대규모 작업이었다.

결국 1998년 4월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한 결과 24층까지 철골조가 완성된 시점에서 일단 공사를 중단했다. 그 다음 시행사와 공동매각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길고도 지루한 시행사 측과의 공방이 시작됐다.

그런 가운데 포스코건설은 구조조정이라는 아픔을 겪게 됐고 유성 프로젝트 또한 수주 영업과 관련된 직원들이 대부분 퇴직하게 됐다.

1998년 이후 시행사와의 지리한 사업추진에 대한 공방은 포스코건설이 사업권 전체를 인수해 단독 매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냄에 따라 2000년 9월 유성프로젝트는 포스코건설 소유가 됐다.

포스코건설은 소유권을 취득한 후 스위스의 UIT, 미국의 TPL사 등의 외국 펀딩사들과의 계약을 추진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난항을 겪었고, 수지상으로도 손해를 보았던 프로젝트였다. 그때까지 공기업인 포스코라는 모기업의 영향 아래서는 각종 규제로 아파트 등 주택사업에 진출할 수 없어 대안으로 상가나 콘도 등의 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주택과는 달리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경험과 치밀한 사전 검토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결과였다.

또한 포스코가 공기업 체제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각종 감사로 개발사업 추진에 제약을 가했으며, 장기간 많은 인원을 투입하고서도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