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창립 새로운 건설문화 창조의 선봉장 - 거양개발
성장 기반 구축 조직과 경영진의 변천
철강 플랜트 엔지니어링의 선구자 - PEC 포스코건설로 사명 변경
 
PEC는 1970년 7월 23일 주식회사 제철기술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이 회사의 설립은 포항제철소 건설에 관련되는 설계용역을 공정에 맞추어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포스코가 자본금의 30%를 출자한 제철기술컨설턴트는 설립과 동시에 포스코와 장기 설계 역무공급 기본협약을 체결해 토건, 기전 부문의 적산설계와 상세설계 경험을 쌓았다.

1972년 3월에는 회사 이름을 주식회사 스매크(SMEC)로 바꾸었고, 포항제철소 2기 사업 확정 지연으로 150여명을 감원하는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와 진통을 겪었다. 또한 1977년 8월에는 삼성그룹이 출자해 지분 구조가 제철장학회 37.5%, 김주택 37.5%, 삼성그룹 25%로 바뀌기도 했다.

SMEC는 10여년 동안 포항제철소 설계 역무 수행에 치중했으나, 기술능력, 전문성, 영업력이 취약해 포항제철소 4기 이후 회사 경영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주원 발굴과 외부 수주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본사를 서울로 이전했다.

서울 이전 후 여의도 포스코 본사 사옥 건립이 구체화되면서 이 사업 수행을 위해 건축, 기계, 전기, 설비 분야 고급 기술인력을 대량 확보했다. 그러나 포스코 본사 사옥 구상이 정부 규제로 무산되면서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여기에 제2차 오일쇼크로 국내 경기가 침체 국면을 맞으면서 불투명한 비전과 어려운 때를 대비한 준비가 없었던 탓에 회사의 실질적인 사주였던 김주택이 사업 포기 의사를 포스코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본사를 다시 포항으로 이전하고 직원을 대량 해고하는 등 종말을 맞는 듯 했으나, 1982년 9월 1일 포스코가 전액 출자하여 인수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개인 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전환되면서 계획 예산제도 도입, 정관, 조직, 인사, 회계, 역무관리, 외주관리 등 사규 일체의 정비와 심사분석, 운영회의 제도를 구축하여 명실상부한 포스코의 계열사로서 기틀을 확립했다.

1983년 8월에는 회사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포스코 계열사에 걸맞은 상호 변경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제철엔지니어링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포스코 인수 이후 법정 요건 미달로 플랜트 엔지니어링 종합 용역에서 전문 기술 용역업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수주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3년간 계획적으로 기술사, 고급 기술자를 확보하고 자본금 증자로 등록 요건을 보완해 1986년 3월 산업설비 용역업으로 확대 등록했으며, 동시에 정보처리 용역업 등록과 1987년 7월에는 환경오염 방지 시설 설계·시공업, 1987년 12월에는 무역업을 등록해 종합 기술용역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완비했다.

이 회사는 포스코의 100% 출자회사로 전환된 이후 매년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계속하여 왔다. 특히 1985년도는 최초로 매출액 100억원을 달성하였으며, 1989년도에는 동종 업계 상위 수준인 400억원을 돌파해 인수년도 기준 약 18배, 총자산은 236억으로 40배 신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1992년 9월 1일에는 전문 건설업(설비공사) 면허를, 1992년 12월 4일에는 일반 건설업 중 토건공사업 면허를 취득해 턴키 수주 영역 확대 및 환경 분야의 역무 확대 기반을 조성했다. 이로써 환경 분야 및 모든 건설 분야에서 설계, 시공, 감리업무까지 가능하게 됐다.

1993년 7월에는 후판공장을 건설하는 태국 LPN 플레이트 미니밀 프로젝트를 일본과 중국 등의 유수 업체와 국제 경쟁입찰에서 당당하게 수주함으로써 해외 진출의 길을 열었다. 이어 1993년 11월 11일에는 베트남 미니밀 플랜트(VPS)를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수주했다. 한편 1994년 1월 1일부로 상호를 포스코엔지니어링주식회사(PEC)로 변경했다. 상호 변경은 21세기 엔지니어링 산업의 주역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이미지 제고와 함께 국제화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