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건설로 철강플랜트 경험과 기술 축적
전략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연주(連鑄)사업
제철소 건설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에 공헌 광양 4냉연 공사와 냉연 신예화 및 합리화
제철소 건설의 경험을 포스코건설로 광양 No.4 CGL 신설과 CGL 기술 수출
철강 플랜트 사업을 주력으로 회사 출범 스테인리스 사업의 추진
포스코의 설비 경쟁력 강화에 기여 미니밀 사업의 희비
신기술 확보와 핵심사업 선정 발전 플랜트를 특화사업으로 추진
광양 5고로(高爐)의 성공적 건설    
 
연간 2800만톤의 조강생산 능력을 보유한 포스코는 생산 규모와 품질, 가격 경쟁력에서 세계 최고의 철강사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이는 1970년 4월 경북 포항의 형산강변에서 건설의 첫 삽을 뜬 이래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함으로써 가능했다.

포스코의 제철소 건설은 1968년 4월 1일 창립된 포항종합제철(포스코의 전신, 이하 포스코로 표기함)이 국가적 사명감을 갖고 이뤄낸 결과이지만 그 주역은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설비계획본부와 사업관리를 담당한 건설본부였다고 할 수 있다.

1968년 5월 1일 포항 현지에 건설사무소를 발족하고, 1970년 4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을 거행하면서 시작된 포항제철소 1기 건설 당시에는 일관제철소 건설 경험이 전혀 없어 건설 기술은 일본 JG(Japan Group)의 기술 지도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주요 설비도 대부분 일본 업체로부터 구매했다.

포스코는 회사 창립 당시부터 건설부(후에 건설본부)를 두고 공장 부지조성과 공사행정 기초 체제 확립에 주력했고, 새로운 제도의 도입 및 차관 공사의 특수성에 따른 제반 업무의 연구와 교육을 담당했다. 공사는 국내업체에 시공을 맡겼고, 공사 발주 및 시공감독과 공사관리는 포스코가 직접 담당했다. 설비는 외국 공급사들이 건설 지도와 성능보장을 책임지도록 하는 수정된 턴키 방식으로 진행했다.

1970년 7월에는 제철소 건설을 위한 설계 협력회사인 ㈜제철기술컨설턴트(1972년에 스매크로 사명변경-SMEC: Steel Mill Engineering Consultant)가 설립됐다. 포스코는 이 회사 설립 당시 30%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포스코건설의 한 축이었던 PEC의 전신이었다.

제철기술컨설턴트를 설립한 것은 모든 공사의 시방업무를 설비와 더불어 외국에서 도입했기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 축적이 미비했고, 제철설비에 대한 경험 있는 기술자가 국내에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건설을 위한 설계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82년 9월 제철기술컨설턴트 지분을 100% 인수하고 이듬해인 1983년 8월 제철엔지니어링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리고 1994년 1월 1일 포스코엔지니어링주식회사(PEC)로 다시 사명을 변경했다.

1970년 4월에 착공해 1973년 7월에 준공한 포항제철소 1기 건설 이후 숨 가쁘게 이어진 제철소 건설공사는 1992년 10월 광양제철소 4기 종합 준공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단 한차례의 공기 차질도 없이 대역사를 완성한 포스코의 철강신화를 창조한 것이었다. 이는 포항제철소 건설의 첫 삽을 뜬 이래 연인원 4000만명이 땀 흘려 이룩한 결실이었다.

그 사이 조강생산 능력은 포항제철소 1기의 103만톤에서 2100만톤으로 늘어나 포스코는 세계 3위의 철강회사로 성장했으며,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는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1위와 2위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