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건설로 철강플랜트 경험과 기술 축적
전략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연주(連鑄)사업
제철소 건설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에 공헌 광양 4냉연 공사와 냉연 신예화 및 합리화
제철소 건설의 경험을 포스코건설로 광양 No.4 CGL 신설과 CGL 기술 수출
철강 플랜트 사업을 주력으로 회사 출범 스테인리스 사업의 추진
포스코의 설비 경쟁력 강화에 기여 미니밀 사업의 희비
신기술 확보와 핵심사업 선정 발전 플랜트를 특화사업으로 추진
광양 5고로(高爐)의 성공적 건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의 양대 제철소를 건설하면서 숱한 건설 신화를 남겼으며,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포스코의 건설요원들은 포항제철소 1기 건설자금이 대일청구권 자금을 일부 전용한 것이었기에 “선조의 ‘피 값’으로 짓는 것이므로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우향우 정신’으로 건설에 임했다. 이는 포스코의 사풍을 형성하는 원류가 됐다. 이런 정신으로 ‘공기 준수’와 ‘품질 우선’을 바이블 삼아 돌관공사를 마다하지 않았고, 불량 시공물을 폭파하고 재시공하기도 했다. 부진한 공기를 만회하기 위해 공사독찰부장 제도라는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으며, 추석 휴가를 반납하고 현장에서 합동 성묘제를 지내기도 했다. 부소장급을 상황 책임자로 임명해 담당구역별로 공사감독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특별감독제를 비롯해 건설 폐자재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정리정돈 별동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구분 건설기간 공기
(개월)
공기단축
(일수)
투자비
(억원)
건설단가
(달러/톤)
국산화율
(%)
조강능력
(만톤)
포항 1기
포항 2기
포항 3기
포항 4기
광양 1기
광양 2기
광양 3기
광양 4기
1970.  4.  1 ~ 1973.  7.  3
1973.12.  1 ~ 1976.  5.31
1976.  8.  2 ~ 1978.12.  8
1979.  2.  1 ~ 1981.  2.18
1985.  3.  5 ~ 1987.  5.  7
1986.  9.30 ~ 1988.  7.12
1988.11.  1 ~ 1990.12.  4
1991.  1.  5 ~ 1992.10.  2
39
30
28
25
26
21
25
21
54
31
144
152
57
110
58
28
1,204
2,654
6,712
8,350
16,991
12,958
18,817
18,852
287
352
469
460
723
473
1,048
761
12.5
15.5
22.6
35.1
49.4
55.4
61.3
63.1
103
157
290
300
270
270
270
330

치밀한 건설공정 관리를 위해 과학적인 공정관리 기법을 도입해 적용했다. 포항제철소 건설 때에는 PERT(Program Evaluation and Review Technique)를 적용했고, 광양제철소 건설 때에는 미국 MMSI사의 MAPPS(Management and Project Planning System)을 도입해 계획 수립부터 전체 공사에 적용했다.

포스코는 초기에 일본 등 철강 선진국으로부터 기술 전수를 받으면서도 자체 기술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광양 1기 때부터는 사업계획 수립, 기본기술계획(MEP) 작성 및 검토, 구입사양서 작성, 견적 및 도면 검토, 건설감독 및 조업지도 등 일련의 제철엔지니어링 업무를 자체 역량으로 수행했다. 창업 후 불과 17년만에 선진국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력 수행 체제를 구축한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포스코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 품질의 제철소를 최단 기간에 건설해 국가경제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포스코는 이뿐만 아니라 포항과 광양에 제철소를 건설하면서 설비 국산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국내 기계공업 발전에 기여했다. 포항 1기 때에는 대부분의 설비를 외국에서 들여왔으나 자립경제 달성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설비 건설 때마다 설비 국산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국내 업체들의 제작 기술이 부족하고 설계 능력이 떨어져 품질에 결함이 생기기도 하고, 납기 준수와 애프터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정책적 배려 차원에서 국산화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갔다.

특히 포항 3기부터 외국 설비공급사와 계약을 할때 ‘CASE II’ 조항을 문건에 삽입했다. 이것은 외국 업체를 주계약자로 해서 발주를 하되 국내 업체가 주계약자와 하청 계약을 맺어 설비의 일부를 제작해 납품하도록 하는 계약 방식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제철공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국산화율이 60% 이상 되는 원료처리설비를 비롯한 6개 플랜트의 국산화를 의무화했고, 11개 설비는 건설본부가 직접 발주했다.

이러한 설비 국산화는 광양제철소를 건설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1기 설비 발주에 앞서 한국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등 8개 업체를 국내 제작사로 선정하고 기술지도를 시행해 이 업체들이 설비 제작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또 제작사들이 제작 일정을 준수하고 품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작관리 전담부서를 두어 중점 관리하는 등 건설 초기부터 설비 국산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고로, 코크스, 제강, 연주, 열연 설비와 같은 일관제철소 핵심 설비는 상당 부분이 특허일 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므로 외국 업체들을 주계약자로 하되, 국내 업체들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기술을 전수 받을 수 있도록 유도했으며, 이를 통해 3기부터는 국내 제작사들이 외국사로부터 독립해 자력으로 기술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노력을 통해 광양제철소 4기 때에는 국산화율을 63.1%까지 높일 수 있었다.

포스코는 설비 국산화를 통해 국내 중공업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건설공사를 통해 건설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포스코의 양대 제철소 건설에는 국내 상위 10위권 건설사들이 모두 참여했는데 포항 1기 건설 당시에는 대형 플랜트 건설 경험이 없어 공급사 측의 기술지도에 의존하는 상황이었으나 공사가 계속 진행되면서 건설업체들의 역량과 기술이 점차 배양됐다.

이 외에도 막대한 건설 노동력 투입에 따른 건설인력 양성, 많은 종류의 신예 건설장비 도입에 따른 건설현장의 장비화 유도, 초기 부지조성공사에서의 새로운 공법 도입에 따른 토목건설 기술의 조기 발전, 모든 건설공사의 초석이 되는 콘크리트 품질 향상 및 생산능력 향상에 따른 국내 건설산업의 밑거름 조성 등 국내 건설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