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건설로 철강플랜트 경험과 기술 축적
전략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연주(連鑄)사업
제철소 건설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에 공헌 광양 4냉연 공사와 냉연 신예화 및 합리화
제철소 건설의 경험을 포스코건설로 광양 No.4 CGL 신설과 CGL 기술 수출
철강 플랜트 사업을 주력으로 회사 출범 스테인리스 사업의 추진
포스코의 설비 경쟁력 강화에 기여 미니밀 사업의 희비
신기술 확보와 핵심사업 선정 발전 플랜트를 특화사업으로 추진
광양 5고로(高爐)의 성공적 건설    
 
포스코의 신화를 창조해낸 숨은 주역은 4반세기 동안 양대 제철소의 건설을 담당해온 건설본부와 설비계획본부(엔지니어링본부)였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조직이 자체 수행능력을 갖추고 엔지니어링, 설계, 시공관리, 기자재 제작 관리 등 제철소 건설과 관련된 업무를 직접 수행 했던 것이다. 이러한 건설 시스템은 일본이나 유럽의 제철회사들도 갖고 있지 않은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철소 건설 초기인 포항제철소 1기 건설 당시에는 건설 기술이 없어 일본 JG로부터 기술자문을 받아야 했다. 제철소 구경도 못하고 제철소를 지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사업관리보다는 현장 감독 노릇만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건설기술 지도를 맡은 일본 기술자들로부터 도면 읽는 것부터 공사관리까지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조금씩 기술을 익혔다. 이처럼 포스코는 우수 인력을 선발해 부단한 교육으로 점차 엔지니어링과 사업관리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광양제철소를 건설할 때에는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1982년 9월 광양만 바다를 메우기 시작해 제철소 부지를 만들고 4기까지 1200만톤의 세계 최대 광양제철소를 10년 만에 건설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복구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제철소를 건설한 일본에서도 이처럼 단기간에 대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한 예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10년 만에 대단위 일관제철소 건설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잘 훈련된 조직과 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항제철소를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민족적 과업인 제철소 건설을 ‘내 손’으로 해내겠다는 신념은 앞섰지만 기술은 부족해 외국의 설비공급사로부터 기술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한 기술을 하나하나 습득해 광양제철소 4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설비계획 단계에서부터 준공 후 설비 운전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던 것이다.

우수 인력이 제철소 건설을 자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힘이 됐지만 광양제철소가 종합준공되면서 향후 인력 운용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포스코는 20년 이상 잘 훈련된 건설 인력의 향후 운용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했다. 광양 3기 건설이 끝날 무렵인 1990년말 박태준 회장이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광양제철소 종합준공 뒤 800여명에 달하는 건설 관련 인력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경험을 계속 살려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고, 이를 구체화한 것이 거양개발의 탄생이었다.

새로 건설업 등록을 하려면 여러가지로 번거로운 점이 많아 1991년 5월 15일 포항제철소의 정비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제철정비철구공업주식회사의 정비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별도 법인화(포철산기)시키고, 건설을 담당하는 조직만으로 운영하게 했다. 그리고 그 해 8월 26일에 거양개발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면서 본격적인 건설회사로 탄생시켰다.

광양제철소 건설 업무가 종료되면서 포스코의 건설 관련 인력을 거양개발로 보내 회사를 키워나갔다. 500여명이 넘던 건설본부 인력 중 300명 가까운 인력이 거양개발로 자리를 옮겨 건설회사로의 면모를 갖추는데 기여했다.

이렇게 탄생한 거양개발은 석회소성설비와 같은 제철소 부대설비 건설 업무를 맡으면서 점차 건설회사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그 후 광양제철소가 종합 준공되고 난 뒤에는 철강 플랜트 공사에 적극 참여, 포항 4고로 1차 개수를 비롯해 각종 합리화 공사나 신예화 공사를 수주해 시공하면서 능력을 배양했다.

1982년에는 지분 100%를 인수한 SMEC를 광양제철소 설계업무에 참여하도록 했다. SMEC 시절에는 설비계획본부가 필요로 하는 설계를 지원해주고, 설계에 따른 예산 견적을 뽑는 일을 주로 했으나, 포스코의 자회사로 전환되면서 엔지니어링 회사로 발전해나갔다.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링을 한 것은 1987년 스테인리스 1기 건설 때였다. 스테인리스 공장에 들어가는 산세(酸洗) 설비를 맡아 수행한 것이 PEC가 엔지니어링 업무를 처음으로 수행한 것이었다.

1992년 10월 광양제철소가 종합 준공되면서 건설본부의 500여명에 달하는 인력과 엔지니어링본부의 200여명 인력을 어떻게 할 것 인지가 여전히 고민이었다. 회사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특수한 환경에서 잘 훈련된 인력을 그냥 뿔뿔이 흩어지게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그런 상황에서 1994년 3월에 김만제 회장이 취임해 포스코의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30년 가까운 엔지니어링과 건설 분야의 경험 인력을 통합해 세계적인 E&C 회사를 만들기로 하고 1994년 12월 1일 포스코건설을 탄생시켰다. 거양개발에 PEC를 흡수 합병시키고 포스코의 건설본부와 엔지니어링본부 인력, 그리고 포스코의 스태프 분야에서 일부 인력을 받아 포스코건설로 합류시켜 새로운 건설회사를 만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