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건설로 철강플랜트 경험과 기술 축적
전략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연주(連鑄)사업
제철소 건설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에 공헌 광양 4냉연 공사와 냉연 신예화 및 합리화
제철소 건설의 경험을 포스코건설로 광양 No.4 CGL 신설과 CGL 기술 수출
철강 플랜트 사업을 주력으로 회사 출범 스테인리스 사업의 추진
포스코의 설비 경쟁력 강화에 기여 미니밀 사업의 희비
신기술 확보와 핵심사업 선정 발전 플랜트를 특화사업으로 추진
광양 5고로(高爐)의 성공적 건설    
 
포스코건설은 포스코의 철강사업을 주력으로 출범했기에 조직 또한 철강사업 중심으로 구성됐다. 출범 당시 철강사업 관련 조직은 엔지니어링 부문의 설계기술본부(토건설계와 기전설계 담당), 광양엔지니어링본부, 플랜트사업본부(포스코 외의 플랜트와 해외 플랜트), 선강사업본부, 압연사업본부가 있었고, 건설 부문으로는 포항플랜트공사본부, 포항일반공사본부, 광양공사본부가 있었다.

철강사업 조직은 1996년 1월 1일 설계기술본부와 광양엔지니어링본부를 합친 설계본부, 압연사업본부를 비롯해 포항플랜트공사본부, 선강사업본부, 포항일반공사본부, 광양공사본부를 합쳐 발족시킨 철강사업1본부와 철강사업2본부, 미니밀 사업을 위해 신설한 미니밀사업본부로 구성됐다. 또 플랜트사업본부에서 이름을 바꾼 산업플랜트사업본부가 있었다.

출범 당시의 철강사업은 엔지니어링 담당 대표이사와 건설담당 대표이사가 나누어 관장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1996년 1월 전체 조직을 철강사업 부문, 일반건설 부문, 전략사업 부문으로 나누면서 철강 부문을 한 명의 대표이사가 총괄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이른바 엔지니어링과 시공의 통합운영 체제로 바꾼 것이었다.

엔지니어링과 건설 부문의 통합과 분리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1998년 6월 취임한 박득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1999년 1월 설계감리본부를 설계본부로, 철강사업1본부를 선강사업본부로, 철강사업2본부를 압연사업본부로, 철강사업3본부를 해외영업실로 개편하면서 엔지니어링과 시공을 분리했다.

그러다가 2004년 3월 한수양 사장이 취임한 뒤 2004년 5월 25일의 조직 개편에서 플랜트영업실, 철강엔지니어링본부, 철강건설본부를 합쳐 철강사업본부를 탄생시켰다. 엔지니어링과 시공의 통합조직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었다.

엔지니어링과 시공의 통합과 분리는 서로 장단점을 안고 있었다. 어떤 점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통합 운영할 수도 있고, 분리 운영할 수도 있었다.

건설업은 발주처에서 설계계획을 수립해 발주를 하면, 이를 수주한 회사에서는 엔지니어링에서부터 설계까지를 담당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비를 구매한 다음 건설에 들어가게 된다. 건설이 이어받아 설치와 시운전을 거쳐 발주처에 인도하게 된다.

건설업의 핵심은 얼마나 코스트를 낮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전체 코스트 관리는 엔지니어링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엔지니어링과 시공이 통합돼 있으면 건설요원이 엔지니어링에 참여해 코스트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설계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통합 운영의 경우 엔지니어링이 시공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엔지니어링은 사람이 설계를 하고 설비를 제작하는 과정인데 설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엔지니어링과 시공이 나눠져 있으면 오류를 바로 잡아낼 수 있지만 한 조직으로 돼 있으면 코스트 다운은 가능해지는 반면, 엔지니어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시공에서 묻혀서 처리되기 때문에 엔지니어링 기술력의 발전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박득표 회장 시절에는 엔지니어링과 시공을 분리해 운영했다. 그러나 한수양 사장이 취임하면서 코스트 다운에 무게 중심을 두어 엔지니어링과 시공의 통합조직으로 운영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