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1연주공장 4연주기 신설 광양 1연주공장 3연주기 개조
포항 1연주 대단면 블룸 연주기 신설    
 
연주(連鑄)사업은 포스코건설이 출범 후 전략사업의 하나로 선정하고 있던 분야였다. 광양 1연주공장 4연주기 신설공사는 1제강 공장에서 생산되는 용강(鎔鋼)으로 연간 180만톤 규모의 슬래브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공사는 포항과 광양의 연주기 건설 공사를 자력으로 수행하기 위한 야심찬 목표로 영국의 데이비 매키사와 합작으로 설립한 DDL(Davy Distington Limited)사를 컨소시엄 파트너로 해서 1995년 5월 수주해 그 해 12월 11일 착공했다.

하지만 연주설비에 대한 엔지니어링 기술이 전무한 상황에서 발주처인 포스코로부터 저가로 수주한 관계로 원만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을지가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우선 설비비 절감을 위해 발주 단위를 세분화하고 대형 중공업체에서 중형 중공업체로 발주선을 조정했다. 발주 지연으로 인한 납기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제작관리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제작사에 감독자를 파견, 제작 일정을 관리했다. 그리고 조달에 장기간 소요되는 부품과 수입 기자재는 별도로 분리해 조기 발주함으로써 납기를 준수할 수 있었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서는 기존 공장의 정정 야드를 개조해 공장을 확장함으로써 건축 철골 공사비를 줄이도록 했으며, 최대한 기존 부지와 설비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설비계획을 세웠다.

착공 후 토공 및 항타 때 발생하는 진동이나 토사붕괴, 지반침하 등으로 인해 기존 공장의 구축물에 미칠 영향을 제로화하고, 정밀한 기기에 영향이 미쳐 조업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종 계측기를 설치해 변형 방지 여부를 확인하면서 공사를 추진했다.

기계 기초공사가 어느 정도 완료된 1996년 8월 1일 기계설치 공사에 착수했으나, 가장 먼저 설치해야 할 주상 철골 기자재가 제작업체의 부도로 반입이 지연됐다. 그래서 긴급히 창원의 하청업체로 달려가 이미 제작된 철골과 자재를 일시에 반출시킴으로써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험난한 기계 공사의 서막을 알리는 데에 불과했다. 납기가 됐는데도 기기 제작은 지지부진했고, 입고된 기자재는 설치할 때마다 문제가 발생해 관련 설계자와 공사 시공자의 애를 태웠다. 납기 지연으로 인한 시공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준공일을 역산해 기계설치 공사를 재검토했다. 그런 다음 필요한 기기들의 반입 순서를 조정해 제작업체에서 순서대로 제작해 납품하도록 함으로써 시공 일정을 준수해 나갔다.


기본 설계를 담당한 컨소시엄 파트너사인 DDL의 슈퍼바이저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과거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방안을 제출해도 성능 보장을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승인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 예로 DDL 측에서는 쇳물이 슬래브로 고체화되는 과정에서 슬래브를 지지해주는 장치인 세그먼트 베이스(Segment base)의 전체 오차를 0.05㎜ 이내로 맞추라는 공문을 보내 왔다. 현실적으로 이 수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치여서 현장에서는 도저히 맞출 수 없었고, 검측자 개인 간의 오차만도 0.1㎜ 이상이었다. 이에 과거 VAI나 만네스만의 설비 설치 때의 기준인 0.5㎜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고 자료를 제시하고 향후 세그먼트 설치 때 충분히 기준 오차인 0.3㎜를 맞출 수 있다고 설득해 겨우 검측을 완료할 수 있었다.

또한 DDL의 슈퍼바이저들은 유압 배관 설치 후 배관을 세척하는 플러싱 작업 후 배관 내부의 청결도를 측정하는 등급을 3등급으로 해야만 성능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우주선에서나 적용되는 기준으로 현장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등급이었다. 그래서 유압 시스템을 분석해 시스템상의 필터가 3마이크로인데 여기에 맞는 유압 청정도는 6등급이면 충분하다고 설득했다. 6등급이면 정밀기계를 작동하는 서보 밸브(Servo Valve)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포스코의 기존 설비 및 유사한 다른 설비의 유압 시스템을 비교 분석하고 사용 실적 등을 제시하며 압박함으로써 겨우 통과시켰다. 이 후에도 무수한 기술적 분쟁이 발생했지만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

슬래브를 운반하는 정정설비의 롤러 테이블(Roller Table) 모터 직결 테스트 때에는 베어링에서 과다하게 소음이 발생해 엔지니어링 측에서는 시공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시공 측은 감속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엔지니어링 측의 요구대로 감속기를 해체하고 프레임을 수정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감속기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교체 후에도 소음이 계속 발생해 해결 방법을 고심하다가 에어/오일 급지 방식에 따라 공기가 빠지면서 생기는 소음의 일부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엔지니어링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설치를 마치고 1997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운전에 착수, 1997년 9월 22일 처음으로 슬래브를 생산했으며, 예정대로 착공 22개월 만인 9월 30일, 공기 준수가 힘들 것 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깨고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이 공사는 회사 출범 초기의 핵심 기술 및 사업관리 능력 부족으로 인해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으나 연주사업에 최초로 참여해 성공적으로 완료함으로써, 광양 2연주공장 1연주기 개조, 광양 1연주공장 3연주기 개조, 포항 1연주공장 대단면 블룸 연주기 신설, 시험연주기 등 후속 연주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수주하는데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