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No.1 미니밀 광양 No.2 미니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 강재 소비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었다. 기존 전기로 업체들이 설비를 증설했으나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철강재 수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포스코는 설비 증설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국내 철강 수요가 2000년 전후를 고비로 2010년이 되면 쇠퇴기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생산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고로보다는 미니밀(박슬래브)을 건설하기로 했다.

포스코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건설한 미니밀 설비는 전기로에서 고철을 녹여 두께 60㎜의 얇은 슬래브를 만든 뒤 가열로와 조압연설비를 거치지 않고 사상압연설비에서 열연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선진 제철 설비였다. 기존의 고로법은 고로에 철광석과 코크스를 넣어 녹여 얻은 선철(銑鐵)로 두께 200~300㎜의 슬래브를 만든 뒤 이를 가열로, 조압연, 사상압연 공정을 거쳐 1.2~22㎜의 열연강판을 제조하는 공정이었다.

포스코건설이 일부 설비공급과 시공을 맡은 광양 No.1 미니밀 사업은 연산 180만톤 생산규모였다. 이 중 포스코건설의 수주 금액은 외자를 제외한 설비공급과 시공을 합쳐 2880억원에 달하는 큰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포스코건설 출범 직후인 1995년 1월 24일 착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회사 출범 후 가장 큰 프로젝트로 굴착 102만㎥, 항타 1만 300본, 콘크리트 22만 4000㎥, 기계설치 4만 2000톤, 케이블 포설 3891㎞ 등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했다.

항타와 굴착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수처리 설비 스케일 피트 굴착(GL-23m) 완료 시점에 시간당 30㎜이상의 폭우가 3시간에 걸쳐 100㎜나 쏟아져 토질이 변형되고 매몰되면서 굴삭기 1대가 침수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주야의 복구에도 불구하고 7일 정도의 공정이 지연되고 많은 경비가 소요됐다.

기계 기자재 중 연주의 신설비인 코일 핸들링 시스템은 제작과정 중 발견된 문제점 해결로 당초 대비 4.5개월이 지연 납품 됐으며, 고압가스 설비 중 인허가를 득하지 않은 제품이 반입돼 이를 교체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과 인력을 낭비해야만 했다.

종합준공을 한달여 앞둔 1996년 8월 10일 오후 9시 33분부터 시험 조업(Hot Run Test)에 들어가 11일 오전 4시 4분까지 두 차례에 걸쳐 147톤의 고철을 전기로에 투입해 11일 오전 4시 20분 첫 출강(出鋼)에 성공했으며, 이 용강(鎔鋼)을 래들 퍼니스(Ladle Furnace)로 옮겨 온도와 성분 조성을 거친 후 두께 60㎜의 얇은 스래브로 주조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미니밀 전 설비에 대한 시운전은 아니었지만, 제강설비와 수처리 설비에 대해 포스코건설이 자력으로 주어진 일정에 무사히 시운전을 마침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많은 경험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 공사는 연 인원 86만명을 동원해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가운데 도급계약 21개 차수에 45개 협력업체와의 202건에 달하는 계약을 관리하느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협력업체 월 기성 지급 때 현장소장이 350~400회 이상 결재를 해야 했다.

이밖에도 일부 협력업체의 노임 체불에 따른 근로자들의 농성, 협력업체 부도에 따른 후속업무 처리, 환경 관련 고발에 따른 해결 노력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당초 준공일 대비 15일을 단축해 1996년 10월 9일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거행했다.

광양 No.1 미니밀은 제철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용광로에 의한 일관제철 방식을 완전히 탈피해 고철을 주원료로 해서 전기로로 쇳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용광로, 코크스, 소결설비가 지니는 환경오염 배출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께 90㎜ 이하의 박슬래브를 고속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고속 연주기와 연결돼 있어 고생산성과 저원가의 조업이 가능했다.

이처럼 이 설비를 통해 기존의 고로설비 대비 최고 50%의 설비비를 절감했으며, 제조시일을 8일 단축했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40% 절감했으며, 노동생산성을30% 증가시키는 등 저원가 시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