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과 광양의 CDQ 설비 건설 세계를 놀라게 한 No.2 LDG 홀더 개체공사
 
가. 광양 1기 CQD 설비 설치로 에너지 절감 기여

포스코는 광양 5고로 건설시 투자를 최소화하고 기존의 부대설비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 아래 고로 공정의 필수 설비인 코크스 및 소결공장을 별도로 건설하지 않는 것으로 계획했다. 코크스공장의 추가 증설 없이 기존의 코크스공장에 CMCP(Coal Moisture Control Process: 석탄습도 조절) 설비와 CDQ(Coke Dry Quenching: 건식소화설비) 설비를 도입해 코크스 생산능력을 증대하고자 했다.

발주처인 포스코에서 당초 CDQ 설비의 내자는 포스코건설에 수의 발주하고 외자는 3개사를 지명, 경쟁하는 것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전략설비 50% 외에는 지명경쟁을 해야 한다는 포스코의 발주 방침에 따라 내자설비도 지명경쟁으로 구매 방법이 바뀌었다. 과거의 실적에 따라 삼성중공업이 포항 4기 CDQ설비의 건설 경험이 있는 일본의 IHI사와 손을 잡게 됐고, 한진중공업이 포항 3기 CDQ 설비를 건설한 독일의 OTTO사와 동반자로서 입찰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자연히 포스코건설은 나머지 경험사인 일본의 NSC사와 컨소시엄 파트너가 됐다.

당시 포스코건설은 경쟁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NSC 역시 CDQ 건설 경험은 많았으나 경쟁이 아닌 전략적 수의에 의해 사업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향후 벌어지는 입찰의 어려움은 뻔히 예견할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긍심이 강한 NSC와 손발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NSC와 입찰가를 합의하기까지 벌인 신경전은 입찰 자체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또한 CDQ 설비의 입찰 전에 광양 5고로 관련 원료처리설비의 지명경쟁 입찰이 있었는데, 포스코건설이 근소한 차이로 삼성중공업에 넘겨주는 등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이런 가운데 꼭 수주해야겠다는 신념과 경쟁사에 대한 치밀한 전략 분석, 동반 입찰을 통한 설비 견적가의 하향조정, 철저한 보안유지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2위인 IHI-삼성중공업 컨소시엄을 여유있게 따돌리고 1996년 10월 9일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

NSC가 컨소시엄 리더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계약사양서 확정 과정 모든 고비마다 자기 주장이 강한 NSC로 인해 포스코 담당자들과의 협상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 때마다 진땀을 흘려야 했고 서로 타협과 합의를 도출하는데 전쟁이나 다름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포스코건설의 중재로 포스코와 NSC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발씩 물러서 서로를 인정하게 됨으로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97년 3월 14일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수행 때에는 경험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치열한 지명경쟁에 의한 저가 수주로 실행 운영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돌발적인 IMF 사태로 인한 환율상승으로 외자설비의 환차손을 불러왔고, 이는 더욱 실행 운영의 발목을 잡았다. 뿐만 아니라 CDQ 본체 설비의 공급업체로 계약된 서브 벤더(Sub-Vendor)의 부도로 초래된 3개월 이상의 지연 공정을 만회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고, 포스코건설의 구조조정으로 프로젝트 수행 직원이 부득이 희망퇴직을 해 절대적인 맨 파워 부족에 허덕여야 했다.

또한 시공을 맡은 국내 S사가 설비공급사인 포스코건설과 크고 작은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심지어 시공사에서 포스코건설의 슈퍼바이저 사무실에 기자재를 쌓아 놓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많은 역경을 딛고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999년 2월 28일 준공했으며, 8월 31일 성능보증서(FAC)를 발급 받음으로써 광양 1기 CDQ 설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광양 1기 CDQ 설비에서 도입된 NSC 타입의 CDQ 설비는 이미 포항에 설치되어있던 2기의 CDQ 설비보다 컴팩트할 뿐만 아니라 효율 측면에서도 탁월해 포스코의 조업 측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