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건설 성장의 힘   [이명섭 前 사장]
기술과 가격경쟁력 확보에 힘 쓸 계획   [김진천 부사장┃플랜트사업본부장](운영철학)
철강 건설사업의 새 장을 열다   [고영균 전무┃철강시공 관장┃당시 현장소장]
공기 만회를 위한 고난한 행군   [윤종황 이사보┃당시 현장소장]
전기강판 사업의 유감   [박준민 前 사장]
차세대 연주 시장 주도할 DSR 슬래브 캐스터   [정인화 부장┃당시 연주기개발추진반장]
광양 1기가 준공될 무렵, 그러니까 1987년 경에 박태준 회장이 건설본부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건설본부는 광양제철소 확장을 끝내고 나면 기술적인 면으로나 윤리적인 면으로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건설회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구체화돼 1982년에 설립된 제철정비가 발전적으로 해체되면서 1991년에 거양개발이 설립됐다. 이 무렵 나는 포스코의 건설본부 임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광양제철소의 확장업무가 끝나는 직원들부터 점진적으로 건설회사인 거양개발로 보내야만 했다.

자진해서 가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거양개발이 계열사이긴 하지만 정열을 불태워 젊음을 받쳤던 포스코를 떠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직원들에게 건설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우리나라에 새로운 건설문화를 세우는 중요한 회사로 출발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라며, 어차피 포스코의 건설조직은 해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먼저 가느냐 나중에 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설득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992년 10월 광양4기 종합 준공 후에 나는 건설본부장으로 있으면서 건설업무가 끝나는 직원들을 포스코건설로 보냈고, 1996년 1월 1일부로 건설본부를 해체하고 나도 포스코건설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4년 12월에 포스코건설이 탄생하면서 건설본부 직원들을 대거 보내야 하는 악역 아닌 악역을 맡았는데 나는 계속 남아 있으면서 직원들은 보내야 하는 일은 정말 고통이었다. 또 누구를 남겨 둘 것인지도 고민거리였다. 왜냐하면 포스코의 건설역사가 계승되어야 했고, 나중에 발주업무를 담당하게 될 이들이 포스코건설로 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포스코와 포스코건설의 매끄러운 건설분야 협업 관계를 보면 그때 인선작업이 아주 잘 된 듯하다.

포스코가 이처럼 거양개발을 설립하고, 다시 이를 포스코건설로 확대 개편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포스코의 건설인력이 최고로 많았을 때에는 건설본부 800여명, 엔지니어링본부에 300여명 등 1100여명에 이르렀다. 포스코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이만큼 잘 훈련된 인력이 없었다.

특히 건설본부는 단순한 공사감독 업무에 그치지 않고 CM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건설회사는 아니었지만 국내 어느 건설회사보다 우수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0년 경에 일본의 다이세이(大成)건설이 어느 연구소와 함께 낸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의 건설회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포스코의 건설본부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는 건설본부의 CM능력을 인정한 중요한 일로, 우리와 가장 일을 많이 한 일본이나 유럽의 엔지니어링 회사들도 우리와 같은 독특한 시스템은 갖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수한 인력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기에 ‘담합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부실시공 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건설회사’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포스코건설이 출범 10년 만에 삼성이니 현대니 대우니 하는 굴지의 대형 건설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참으로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이는 제철소 건설에서 엄격한 공정관리, 예산관리, 품질관리 등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건설본부와 엔지니어링 본부의 인력이 밑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