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건설 성장의 힘   [이명섭 前 사장]
기술과 가격경쟁력 확보에 힘 쓸 계획   [김진천 부사장┃플랜트사업본부장](운영철학)
철강 건설사업의 새 장을 열다   [고영균 전무┃철강시공 관장┃당시 현장소장]
공기 만회를 위한 고난한 행군   [윤종황 이사보┃당시 현장소장]
전기강판 사업의 유감   [박준민 前 사장]
차세대 연주 시장 주도할 DSR 슬래브 캐스터   [정인화 부장┃당시 연주기개발추진반장]
포항 STS 제강연주 공장 건설공사의 시공 조직이 정상적으로 갖추어진 것은 1994년 8월 1일, 포스코의 구조조정 일환으로 포스코 건설본부의 제강공사과 공사감독 요원들이 거양개발로 파견되면서부터였다.

당시 나는 거양개발 포항사업본부장인 황경일 상무로부터 이 사업의 건설 업무를 수임해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방안 연구에 들어갔다. 건설회사 경험이 전혀 없었던 우리 팀으로서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먼저 공사 수행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공사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경험자들에게 배워가며 하나하나 공사 기본계획을 작성해 나갔고, 2개월에 걸쳐 완성된 기본계획을 본부장께 보고하고 승인을 얻었다. 그리고 작성한 기본계획에 따라 공사 수행 조직을 구성하고, 공사 행정업무 플로우를 정립했다. 또 공사 실행예산을 편성하고, 각종 가설계획을 확정해 시행하는 등 시공회사 요원으로서의 업무를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여 수행해 나갔다.

사전공사가 종료되고 1994년 11월 1일 본공사가 착공됐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정말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설비공급사로부터 설계자료 전달이 계약 당시의 약속보다 2~3개월 늦어짐에 따라 발주처의 설계가 지연되면서 도면도 없이 계약 이전에 공사를 착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 끝에 본부장과 사장에게 선 시공을 품의했다. 그런 한편 설비공급사로부터 굴착, 항타 도면을 부분적으로 입수해 감독 측과 협의, 시공 여부를 확정하고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자료 부족으로 공사가 지지부진하면서 짧게 계획된 공정 22개월을 준수하기는 요원한 것으로 보였다.

겨우 해를 넘겨 1995년 1월이 돼서야 본격적인 공사가 가능했다. 이때부터 고난의 행군은 시작됐다. 지연 공정 만회를 위해 1995년 6월 1일 철골설치 착수일정 준수를 목표로 밤낮 없는 돌관공사를 진행했으나, 철골 소재 확보 지연 및 철골 제작공사 지연으로 1995년 6월 1일 철골 착수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2~3개월 지연될 전망이었다. 제작부서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당초 일정보다 약 3개월 지연된 1995년 9월 1일에야 철골제작 납품이 가능하게 돼 비로소 공사를 착수할 수 있었다.

토목공사 돌관작업이 끝나자 철골 설치 돌관작업에 돌입했다. 숨 돌릴 틈 없는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는 심정이었다. 철골설치 계획을 면밀히 세워 단시간 내에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철골 설치용 크레인을 하루에 20~30대씩 동원했다. 제철소 건설 역사상 드문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협력업체에서 긍정적으로 따라와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없었다. 철구제작부서에서 하도급 발주한 S기업 철골제작 분의 오제작이 엄청나게 발생해 설상가상으로 설치공정에 차질을 빚었다.

철구팀과 협의하여 현장에 수정팀을 파견해 오제작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공사를 계속해 나갔다. 어쨌든 이런 악조건이 결국 공정 지연 3개월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었고, 이러한 문제점을 후속 공정인 기전공사 및 시운전 공정에서 만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빠졌다.

기전공사는 그야말로 돌관의 돌관이었다. 우리의 이 같은 끝없는 노력이 약간의 희망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기전공사에서 2개월 단축이 가능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포스코의 설비추진반 요원들과 협의, 기전공사 2개월 단축, 시운전 1개월 단축을 승인 받았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수한 건설품질과 완벽한 시운전을 통해 설비성능을 확보했고 1996년 8월 30일 성공적인 준공식을 치를 수 있었다.